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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987, 그 어느때보다 뜨거웠던 그날의 봄

by 윤디워 2023. 11. 29.

1987

1987년 1월 14일 구급차 한대가 급히 남영동으로 향하고 이 소식을 들은 남영동 대공수사처장 박처원은 남영동으로 간다.

결국 차가운 주검이 된 스물두 살의 대학생 박종철.

외부의 목격자를 남긴 중대한 사항이지만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해 버리는 박 차장은 시신은 태워버리라고 한다.

시신을 태우려면 최검사의 도장이 필요해 경찰들은 최검사를 찾아가지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절차에 최검사는 화장허가를 막는다.

위에서 내려오는 압박에 최검사는 굴복하기는 커녕 진노하게되고 그는 시신 보존 명령서에 도장을 찍는다.

그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아래기수 후배 검사의 도움으로 언론으로 흘러들어 가게 되고 서울지검 기사실의 기자 듣고 이사실을  곧바로 취재를 한다.

곧이어 열릴 기자회견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 남영동의 대본이 있었고 이 모든 일에 뒤엔 박처장이 있었다.

이쯤 하면 적당히 알아들으라는 박처장의 사인이 있었지만  기자회견 중 결국 치안 본부장에게서 흘러나온 목격자 의사의 이름.

이제 기자들이 향한 곳은 병원이었고 이번엔 대본 같은 건 준비되어있지 않았지만 공안들의 협박으로 무사히 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다리 저리게 기다리던 윤기자가 끝내 의사와의 단독 취재에 성공한다.

 

한편 사망원인을 알아내려는 건 최검사 쪽도 마찬가지였고 박처장을 직접 만나 부검명령서를 건네고 미국언론에 흘리겠다는 협박도 박처장에겐 통하지 않았다.

한편 유족의 참관과 함께 어렵사리 부검이 시작되고  고문의 흔적이 명확하지만 박종철의 죽은 쇼크사로 처리된다.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차갑게 얼어붙은 강 위에서 박종철의 재를 뿌리지만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재들은 얼음 위에 머물러 있다.

 

한편 최검사는 퇴직하며 모든 자료를 윤기자에게 흘리고 가고 다음날 1면에 실린 박종철 군의 고문치사 사건은 이제 영등포 교도소로 흘러들어 간다.

교도소에 수감된 동아일보 해직 기자 이부영은 메시지가 든 잡지를 교도관 한병용에게 전달을 하고 이 메시지는 김정남에게 보내질 이른바 비둘기였다.

그러나 이 중요한 비둘기 전달은 언제 검문에 걸릴까 불안한 얼굴을 가진 본인보다 87학번 조카 연희에게 맡기는 것이 안전한 일이었다.

연희는 김정남에게 이기자의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정작 세상일에는 크게 관심 없는 이 시대 청춘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미팅을 하러 나온 연희는 곧 시위 현장으로 바뀌어 가는 거리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자리를 뜨려 하는데 파도에 휩쓸리듯 이현장에 휘말리고 만다.

백골단원에게 끌려가던  찰나 그녀를 구해준 마스크를 쓴 남자를 따라 골목 안에 있는 신발가게 안으로 간신히 몸을 피한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같은 대학교 선배였고 만화 동아리를 홍보하는 그를 본 연희는 그 동아리에서 주최하는 비디오 상영회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가 본 것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참혹한 현실을 담은 테이프였다.

 

한편 박처장은 조반장에게 기금을 건네며 박종철 사망사건의 책임을 지우려 하지만 조반장은 모든 것을 폭로하겠다며 박처장을 압박한다.

전 대통령의 4.13 호헌 조치로 언론사는 물론이고 한국 곳곳이 들썩이고 지켜보기만 할 수 없는 대학생들과 더 이상 숨어있을 수 없는 김정남.

보안계장 역시 고민 끝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담긴 면회기록을 이기자에게 전달한다.

한병용은 급박해진 상황에 마지막으로 연희에게 부탁해 전달하려 하지만 그날밤 공안들이 들이닥쳐 한병용을 체포한다.

그가 끌려간 곳은 당연하게도 남영동이었고 끝까지 김정남의 위치를 말하지 않는 한병용을 직접 찾아온 박처장은 그의 과거사를 들려주며 한병용의 가족에게도 암시를 하게 된다.

그날저녁 연희는 엄마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고 연희는 삼촌이 남겨놓은 비둘기를 직접 김정남에게 전달을 하고 그때 김정남을 찾으러 교회에 들이닥친 공안 경찰들과 박처장.

 

그사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는 그간 있었던 모든 일들을 기자들 앞에서 발표하게 되고 그 일로 충성을 맹세했던 대통령에게 완벽히 버림받은 박처장.

그리고 6월 9일 연세대 앞에서 벌어진 독재 타도 시위. 부자비하게 시위대를 짐납하는 전경들에 맞서던 그 순간 시위도중 전경이 쏜 최루탄에 맞은 뒤 사망한 이한열과 흐릿한 세상에 또렷한 발자취를 남긴 박종철의 죽음은 모든 이들을 광장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광장으로 나간 연희가 본 것은 한마음 한뜻의 국민의 열망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그날의 봄 

영화 1987은 6월 민주화 운동을 영화로 다운 첫 번째 영화이다.

영화 속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어떻게 은폐하려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 안에 폭력에 굴복하지 않은 소신으로 만든 균열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피격 사건을 연희라는 가상의 캐릭터가 어떻게 6월을 맞이하는지 보여준다. 

또 평범한 대학생이 맞이하는 죽음은 어떠한 것인지 그것이 모여 사람들이 1987년 6월 어떻게 세상을 바꾸기 위해 광장에 모여 독재타도를 외치며 전국적으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영화적요소로 표현해 냈다.

감독은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민주적인 생활에 잊고있는 역사 속 이야기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한 번 더 인지하는 시간이 되기를 마음에서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한국 현대사의 아픈 시기

1987년은 한국의 혼란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민주화가 되기 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통제받고 억압되어 있었고 그것들로 인해 많은 비리와 사건이 은폐되기도 했다.

영화에서 나온 일들은 비일비재 했고 밝혀지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을 정도였다고 한다. 

대학생 박종철이 고문을 받다 사망한일이 어쩌다 공론화되면서  평범한 대학생들이 분노에 참지 못해 시위에 나서고 시위에 나선 대학생 이한열이 과잉집압으로 사망하면서 우리나라는 더욱더 분노하게 되고 결국 민주화를 이루어낸다.

민주화를 만들어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고 평범한 대학생,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것도 모두 정부에 맞서기 위함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저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행동을 하고 선택을 했을까 생각을 해보지만 시위에 참여하고 정부에 맞서 싸우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일이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희생이 지금 현재의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들의 희생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억압받는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