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목욕탕
부모님을 따라 시골로 이사하게된 소녀 치히로.
부모님과 함께 산길을 달리던중 이상한 터널을 발견하고 모험심이 발동해 터널을 통과해 건너편으로 가게된다.
터널 건너편에는 넓은 공간이 펼쳐지고 멀리서부터 나는 음식냄새를 따라 어느 공간에 다다르게 된다.흥미가 없던 치히로는 혼자 서성이다 멋진 건물을 발견하고 구경한중 나타난 소년(하쿠)이 이곳에서 도망치라고 한다.
놀란 치히로는 부모님에게 달려가보지만 이미 돼지로 변해버린 부모님 .
하쿠가 말한대로 도망가보려하지만 이미 넓은 평야는 강이 되어버렸고 설상가상으로 치히로의 몸이 투명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때 나타난 하쿠가 치히로를 데리고 치히로가 구경하던 멋진건물로 숨어들어가고 그건물은 온갖 요괴와 신들이 와서 놀고 먹는 온천장이었다.
하쿠은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일을하면서 때를 기다리라고 하고 이곳에서 일을하려면 온천장의 주인인 유바바에게 허락을 받아야 일을 할수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바바를 찾아간다.
유바바와 계약을 한 치히로는 유바바에게 이름을 바치고 센이라는 이름으로 생활하게된다.
밤이 되면 바빠지는 온천장에서 일을하던 센은 밖에서 비를 맞고있는 가오나시를 위해 온천장의 문을 열어주고 가오나시는 온천장에 들어오게된다.
그리고 그날밤 아주 특별한 손님이 방문하는데 그손님은 오물신이었다.
센이 오물신을 담당해 목욕을 도와주던중 오물신에 박혀있는 쓰레기를 빼주고 오물신은 온갖쓰레기를 뱉어내면서 강의신으로 변하게된다 . 고마움을 느 낀 강의 신은 센에게 선물을 남기고 떠나게된다.
하쿠는 유바바의 명령으로 유바바의언니인 제니바의 도장을 훔쳐 도장의 저주에 걸리게되고 하쿠를 구하기위해 강의신이준 경단을 먹여보지만 차도가 없자 하쿠를 구하기 위해 제니바를 찾아가기로한다.
그사이 슈퍼뚱뚱이로 변한 가오나시는 센에게 호감을 보였으나 거절당하자 사람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하자 센은 하나남은 경단을 가오나시에게 주자 원래의모습으로 돌아온 가오나시와 같이 기차를 타고 제니바의 집에 도착하게 된다.
제니바는 유바바와 달리 착한마녀여서 센이 도장을 돌려주자 저주가 풀린 하쿠가 센을 마중나오게되면서 센의 흐린기억을 떠올리게된다.
센이 어렸을적 강에 빠진적이 있는데 그 강이름은 고하쿠 . 고하쿠라는 이름을 들은 하쿠는 저주에서 풀리게되고 센과 온천장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만나게된다.
하쿠와 센은 다시 만날날을 기약하며 영화는 끝이난다.
진정한 나를 찾는 신비한 여행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이다.
일본은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로 다양한 신들이 있는데 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인 온천장은 800만신들이 피로를 풀러오는곳이니 만큼 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농업을 관장하는 오시라사마, 병아리신 오오토리사마, 일본의 강에 사는 소의형상의 요괴 우시오니, 나무도깨비 오나마사마등 다양한 신들이 등장하는데 그 신들을 개성있고 다채롭게 표현한것이 이애니메이션의 포인트 이다.
미야자키하야오 감독이 배경을 온천장으로 한이유에 대해 인터뷰 한것이 있는데 한 다큐멘터리에서 신들이 온천을 하며 쉬는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온천장을 배경으로 하였다고 했다.
여기서 온천장은 단순히 신들이 쉬는것 뿐만이 아니라 상처받은 신들이 치유하고 힐링하는 공간이고 그곳에서 일을하는 센 또한 상처받은 신들을 치유하면서 본인스스로도 치유받는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행방불명된 나를 찾는과정
미야자키하야오 감독의 영화에는 환경에 대한 메세지들이 곳곳에 담겨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등장하는 오물신은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센이 오물신의 몸에 박혀있는것을 뽑자 자건거 부터 온갖 쓰레기들이 줄줄이 따라나오면서 강의신으로 변하게되는 모습은 인간의 욕심이 초래하는 환경파괴 라던가 인간의 뒤틀린 욕망등을 오물신에게 표현하며 환경오염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장면은 미야자키하야오 감독이 강에서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을하면서 폐 자전거를 치운적이 있어 그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냈다고 한다.
센과 하쿠가 자신의 이름을 찾으면서 본인들의 자아와 정체성을 찾아내는 과정을 그린 애니매이션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센에 비유해 열살짜리 아이의 자아를 찾아가는것 처럼 묘사했지만 어른들의 사라진 정체성 다 똑같애진 자아와 행방불명된 나를 찾는 과정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