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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마에게, 핍박속에서 카메라를 든 엄마의 기록

by 윤디워 2023. 12. 2.

사마에게

시도 때도 없는 폭격으로 폐허가된 도시 알레포 사마의 엄마 와드는 카메라를 들고 위태로운 생존기를 담아낸다.

엄마는 복도를 가득 채운 연기를 헤치며 아기의 안전부터 확인한다.

먼지로 가득 찬 도시는 5년 전 따뜻했던 희망의 기억을 무색하게 만들고 독재정권에 맞선 학생들은 무언가 바뀔 것이라는 확신에 가득 차있고 와드 또한 그들과 함께했다.

 

그녀는 의대생 친구이자 동지인 함자와 투쟁이 시작된 기억을 떠올려 보고 이듬해 추운 겨울 수갑이 채워진 채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한 민간인 수십 명이 강물에 버려진 채 발견이 된다.

고문과 학살의 증거가 여실함에도 수사의 기대조차 바랄 기관이 없고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더미에서 생존자를 구출하는 일도 부상자를 치료하는 일 모두 그들 스스로 해야 했다.

끊임없는 폭격 속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그들은 하루를 버티고 또 버텨냅니다.

하지만 지옥에선 그 잠깐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고 와드와 함자는 동료를 잃은 슬픔을 같이 버텨내다 사랑으로 자라나고 둘은 소박하지만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부부는 새로 마련한 신혼집에서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내보기도 하고 마치 폐허 속에서도 지속되는 그들의 삶처럼 그들에게도 새로운 생명이 찾아온다.

하지만 쉴 새 없이 퍼붓는 폭격에 와드의 불안함은 점점 더 커져가고 죽음을 공포를 매일같이 느끼며 살아갈 아이의 미래를 이웃소년을 통해 미리 짐작해 본다.

그리고 얼마 후 그런 지옥에서 희망의 씨앗 사마가 태어나고 그러나 아이의 탄생의 기쁨도 느낄새 없이 죽음의 공포는 턱밑까지 따라왔다.

 

함자와 동료들은 밀려드는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재빨리 병원을 세웠고 하지만 밤낮없이 떨어지는 포탄소리는 견디기 힘들었다.

이윽고 먼지투성이의 어린 소년이 축 늘어진 채 병원으로 실려 들어오고 그때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소년의 한마디가 억장을 무너트린다.

그 아이는 잘못이 없어요 

먼지로 뒤덮인 아이들을 보면서 지옥에 내던져진 그들의 비통함만이 느껴진다.

 

한편 도시가 포위된 지 넉 달이 흐르고 여전히 고향을 지키는 그들은 그들만의 생활을 이어나가고 하지만 정부군의 폭격도 모자라 러시아군의 습격까지 아무런 힘도 없는 주민들은 몸을 숨기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다.

그때 폭격에 쓰러진 임산부가 병원에 실려오고 막 태어난 아이가 살아날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수많은 의료진들에 의해 둘 다 무사했고 그런 상황에도 정부군의 폭격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연이의 공급으로 이제 이 마지막 평온까지 지키기 힘들어졌고 투쟁과 저항보다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결국 그들의 고향 알레포를 떠나기로 한다.

고향을 떠나야 하는 수많은 사람의 슬픔은 그동안 겪어왔던 죽음의 공포 그것과 같았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탈출한 와드는 훗날 사마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우리의 싸움은 전부 널 위해서였단다 

 

핍박 속에서 카메라를 든 엄마의 기록

영화사마에게의 특징은 감독 주변의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 스타일의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충격을 남겼다.

와드 감독은 처음 스마트 폰으로 기록을 남기다가 장비를 갖춰 시민기자로 활동하다 의사 함자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사마를 낳는 것을 모두 기록해 일상가운데 파고들어 온 핍박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영화이다.

직접 포탄으로 공격받는 실제 영상이 포함되어있고 영화감독 그리고 남편 그의 친구들 , 사마까지 영화속 인물로 등장해서 극사실주의 다큐멘터리 영화이기도 하고 그래서 현실감이 있고 공포감을 고스란히 느낄수있었다.

 

 

의미도 가치도 없는 허무한 핍박이 낳은 비극 

 

실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매일 죽음의 공포를 견디는  삶을 살아가고 그들의 전부였던 그들의 고향을 버리지 못해 그 지옥 속에서도 삶을 유지해 가지만 결국 아이들을 살리려 고향을 떠난다. 그들의 전부였던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도 끝나지 않는 비극은 고향을 잃은 슬픔이 죽음을 걱정하던 것만큼의 슬픔이라고 한다.

핍박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반 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그들을 볼모로 서로 원하는 걸 얻어내려는 사람들은 어떠한 것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줄 수 있을까?

그게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있는 걸까? 그걸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많은 물음과 궁금증이 생겨나지만 이러한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행동들은 어떠한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히 상상하기 어렵지만 폭격에서 살아남은 그들에게 핍박의 트라우마 대신 앞으로 행복한 날들만이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