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투쟁의 의지
두만강을 건너는 일본인에게 길안내를 해준 어린 해철과 동생 . 그런 그들에게 일본인들이 건낸건 수류탄이었다.
그날이후 해철은 동생을 잃었고 나라도 잃었다. 그리고 그는 마적들을 이끌고 대한 독립군이 되었다.
독립군이 되어 다시 돌아온 두만강 국경엔 일본군 초소가 있었고 초소안에 수류탄을 던져넣고 빠져나오는 일본군을 제압한다.
일본군들은 민가를 급습해 무자비한 학살을 하고 이장하가 이끄는 독립군과 해철이 나타나 일본군과의 전투를 해 승리한다.
일본군을 봉오동 상촌까지 유인하는 임무를 맞는 장하. 해철은 위험성을 말하지만 장하의 의지는 굳건하다.
독립자금책 이진성과 같이 오기로한 장하의 누이는 3.1운동을 하다 옥중에서 사망을 하게되고 장하에게는 누이의 유골과 생전 장하가 준 반지가 전해진다.
봉오동은 고립된 땅으로 적들을 유인하면 퇴로를 막아 제압이 쉽지만 실패하게되면 아군이 전멸할수있는 아주 위험한 땅이었다. 그런 어려움을 안 해청은 장하를 도와 봉오동으로 추격대를 유인하는데 힘을 보태기로 한다.
해철과 장하는 바짝 다가온 일본 추격대를 고려령 돌무덤 까지 유인한다. 그러던중 일본군에 추격에 3.1운동을 하다 사망한 열사들의 유골함이 깨지면서 해철은 분노하게 된다.
첫번째 목적지인 고려령 돌무덤에 도착한 장하와 독립군. 독립군이 일본군을 돌무덤으로 유인한 이유는 그안에 기관총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관총과 폭탄으로 일본군을 제압하지만 이는 오히려 추격대의 의지를 불태우게 만든다.
해철대신 독립자금을 운반하던 소녀을 일본군이 추격하는걸 알게된 장하는 일본군을 유인하기 위해 혼자 나서게 되고 그작전이 통하자 독립군이 일본군을 급습해 소탕하게된다.
그과정에서 장하는 심각한 부상을 입게되고 해철은 무리한 임수를 완수하려는 장하가 안쓰럽기만 하다.
일본군의 포격을 피해 봉오동까지 겨우겨우 다다르고 독립군이 없는것을 안 장하는 포기하려던 그때 . 일본군의 선봉을 저격하는 독립군
고지에서 대기하고있던 대한독립군, 국민회군, 대한 군민도독부, 대한신민단 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100인지 200인지 모르던 독립군의 수가 늘어나 작전을 완수하기위해 대기하고있었던 것이다. 유리한 고지를 섭렵한 독힙군의 사격으로 일본군은 완전히 제압되고 봉오동 전투는 승리로 마무리된다.
산정산에 올라 3.1 운동 열사들과 장하의 누이를 넋을 위로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난다.
독립의 의지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많지만 봉오동 전투에 관해 영화화된건 이영화가 처음이다.
독립군이나 봉오동 전투에 대해 들어는 보았지만 이토록 자세하게 알지 못했는데 영화를 통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심층깊게 알게된 시간이었다.
또 일제시대을 영화화한 작품들은 대부분 피해의 역사에 집중되어 있지만 봉오동전투는 승리하고 저항하는 역사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것 자체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봉오동 전투의 독립군들은 대부분 의병, 민초들에 의해 구성되었고 학생, 농부 가릴것없이 우리나라를 위해 투쟁했고 독립군 뿐만아니라 독립군들을 위해 여성들은 음식을 해 지원했다고 한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홍범도 장군 역시 농사를 짓던 사람으로 독립군에 입단해 포수부터 군대를 이끄는 장군이 되었다고 한다.
봉오통 전투와 3.1 운동 열사 그리고 국민 모두가 나라를 잃은 설움으로 나라를 되찾기위해 조건과 대가없이 목숨 바쳐 싸워냈기 때문에 독립이라는 원대한 꿈을 이뤄낼수있던것 같다.
대한 독립 만세 !
이러한 역사적 배경때문에 아직도 일본과의 관계에서 해결되지않는 부분들도 있다 . 위안부 , 강제 노역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의 문제들이다.
사과는 커녕 역사를 왜곡해 교육하는 일본을 보면서 일본에 대한 반감들이 밑바탕에 깔려있어 외교적 문제나 일본과의 스포츠 경기가 있을때 더 열띤 성화와 응원이 분출되는것 같다.
그런것들이 우리 내면에 있는 애국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일본으로 부터 피해 보상과 진정어린 사과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한때 불타오르는 관심이 아닌 지속적으로 역사적 관심이 필요할것이다.